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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기적으로 올리는 역사 속의 밤문화 시리즈.

오늘은 청량리 588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할 거야.

사실 해방 후 성매매 역사를 모두 한 게시글로 퉁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어차피 어디를 고르건 한국 밤문화의 역사의 일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서

대표격인 청량리588을 고른 것이니 양해하기 바래.

이전에 일제 시대의 밤문화에서 적었지만,

일본이 전시에 한국에 공창제를 도입했었고,

해방 이후 1946년 5월 17일 미군정에 의해 공포된

법령 제70호 “부녀자의 매매 또는 매매 계약의 금지” 를 시작으로

이 공창제를 폐지하고 사창(私娼)제로 전환하게 되었어.

일부 학자들은 이것을 “미군정이 조선 땅에서 매춘 행위를 근절시키려 했고

이 정책이 실패한 결과다” 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 미국인들의 기본 개념은

성매매는 개인의 자유이니 이를 국가에서 관리하는 것은 이 자유에 대한 침해이므로

국가에서 관리하는 제도로서의 공창을 금지시킨 것에 불과한 거고,

이 자유에 대한 개념을 받아들이기에 당시 한국인들이 부족했던 것 뿐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50년 6.25 전쟁의 발발로

전쟁 기간 중 강원도 철원, 화천 등의 격전지로 향하는

경원선의 종점이었던 청량리 역에서 군인들을 상대로

역 주위에서 성매매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게 청량리 588의

시초라고 볼 수 있어.

그리고 1968년 서울시에서 사대문 안의 남아있던 집창촌들을

철거하면서 기존에 종로3가 쪽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유입되어

규모를 확장하고 단숨에 몸집이 커졌지.

전후 경제발전의 상황에서 남아있던 고리타분한

씹선비 기질은 그대로 가진 채 자본주의의 단맛을

맛보고 만 한국인들이 성문제에서 겉으로는 규제를 하면서

뒤로는 성욕과 물욕을 만족하고자 온갖 몸부림을 치는 과정에서

전국 곳곳에 사창가가 생기기 시작했지.

이를 두고 경제 발전기의 성매매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미국의 생산물을 받아들인 결과 농촌이 피폐되었고

생계수단을 잃은 여성들이 대거 사창가로 유입되었으므로

미국이 나쁜 놈이다” 라고 대놓고 반미주의를 내세운

결론을 내놓는 경우도 종종 있으나, 위에서 말한대로

성욕과 물욕이 제대로 만난 결과에 불과하다고 보는게 타당하며

이를 미국이나 군부 독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미관의 개선을 위해

각 사창가들의 대대적인 정비를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익숙한 쇼윈도 형태의 업소 형태가 갖추어졌어.

물론 치솟는 인기만큼 이곳을 없애고자 하는 시도도 종종 있었는데

1981년과 1994년에 각각 정비계획이 있었으나 모두 무산되고 말았어.

1988년 YWCA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청량리 588에서 일하는 여성의 수는

6천700명 정도로 보았으나 이는 터무니 없이 낮게 잡은 결과이고,

전국적으로 당시 성매매 여성의 수는 120만명에 달한다고 추산하고 있어.

이 좁은 방들에서 오고간 돈은 전국적으로 1988년 당시에도 7천700억원 가량이었고

92년에는 1조 5천 4백6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지.

숏 15분이 3만5천원~4만원이었던 시절에도

업주들은 돈을 쓸어담았고 아가씨를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는데. 속칭 딱지 광고 등으로 카페 이름을 내걸고

“월 수 200보장, 숙식제공, 가 족같은 분위기”

같은 어디서 많이 보던 문구로 유인하곤 했지.

남깡여창의 세계관을 수립하신 근성모 화백의 만화를 비유로 들지 않더라도

당시 봉고차로 납치해서 사창가에 팔아넘긴다는 인신매매 괴담이 횡행하였고

실제로 그런 사례가 없지는 않았으나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일하러 온 여성들이었어.

당시 청량리에서 일하던 여성들을 상대로 한국여성개발원에서

14세에서 58세에 이르는 4천6백53명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 결과에는

60.5%가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업소에 들어왔고, 친구나 안면있는

사람의 소개로 들어온 경우가 나머지, 11.8% 는 성폭력, 인신매매, 속아서 라고

대답했으며, 10.8%는 호기심에 일하러 왔다는 대답을 내놓기도 했지.

여성 단체들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처럼 억압에 의한 성매매보다는

가출로 인해 생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발을 들여놓은 경우가

다수를 차지했고, 그 밖에 경제적 자립을 이유로 꼽고 있어.

위 설문 내용을 정리한 표로,

성매매 여성들이 국가에 바라는 사항에

공창과 자치제, 깨알같은 ‘간섭 말아라’가 인상적이지.

호황을 누리던 청량이 588도 노무현이 탄핵을 하네 마네 하던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의 공포로 점차 위축되었고, 결국 2012년도

청량리 일대에 랜드마크 건설이 숨통을 끊었지.

물론 철거 직전까지 업소들은 최대한 영업을 이어갔으나

이미 대세는 오피 안마로 넘어간 시대에 하나 둘 다른 곳으로

여성들이 빠져나가고 순식간에 지주가 된 일부 업주들도

발을 빼기 시작했어.

철거 반대의 소리를 내는 일부 업주들도 있었으나, 이미 대세는 기울어서

이젠 역사의 뒤로 사라지게 되었지.

“오빠 놀다가” 하는 호객 행위의 목소리도 이제는 사라져버린 청량리588.

집창촌의 소멸은 여성단체들이 그렇게 바라마지 않던 결과였건만

실제 결과는 더욱 성매매의 음성화를 부추긴 결과를 낳았고,

이를 통해 과연 여성 단체와 좌파 정부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지.

[참고문헌]

김은경, 한국의 성매매 현황과 형사법적 대응실태 , 성매매 : 새로운 법적 대책의 모
색, 도서출판 사람생각, 2004.
변화순, 성매매 관련 국제기구의 동향과 각국의 법 , 성매매피해여성 학술대회, 서울대
공익인권법 연구센터, 2003.
이준범, 성매매 합법화 여부에 관한 의견 , 서울대학교 BK21 법학연구단 공익인권법
센터 2002년도 4차 세미나 발표자료, 2002.
이호중, 성매매방지법안에 대한 비판적 고찰 , 형사정책, 제14권 제2호, 2002.
조 국, 성매매에 대한 시각과 법적 대책 , 형사정책, 제15권 제2호, 2003.
하주영, 성매매는 범죄인가? , 시대와 철학, 제13권 제2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02.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한국의 성매매 규모와 현황, 2003.

요약.

1. 일제 시대의 공창제는 해방 후 미군정이 파기하고
사창제로 변경하게 됨.

2. 일부는 미국의 생산물의 도입으로 농촌 경제가 어려워져
여성이 성매매로 뛰어들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경제 성장기의 성욕과 물욕의 만남으로 보는 것이 타당함

3. 여성단체 등의 주장과 달리 대부분의
성매매 여성은 자발적으로 일하게 되었으며 ,
가출로 인한 경제의 어려움의 호소가 크며
정부에게는 공창제나 간섭하지 않기를 원함.

https://www.ilbe.com/view/11301611885?sub=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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